과거(科擧) 김태일(金兌一) : 첨추(僉樞) 곤의 사자(嗣子)다. 문과에 급제하여 집의(執義)를 지냈다. 호는 노주(蘆洲)고 상세한 것은 인물편을 볼 것.
인물 김태일(金兌一) : 본관이 예안이며 자는 추백(秋伯), 호는 노주(蘆州)이고 일암(일巖), 곤의 사자(嗣子)다. 현종 때 급제하여 집의(執義)를 지냈다. 소박한 생활에 옛 사람의 기풍과 절조가 있고 실제 쓰이는 문장이 우러러 볼만큼 명민하여 학자들이 노주선생이라 불렀다. 문집이 있고 송곡(松谷) 이서우(李瑞雨)가 묘갈명을 지었다,
........................................................................................ ■ 김무영: 노주공에 대해 더살펴보면 현종1년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집의.진주목사.세자시강원보덕.사간.사복시정을 지냈으며 숙종20년 폐비 민씨를 왕후로 복위하려 할때 사간으로서 남인들과 같이 반대하다가 삭탈관작당하고 문외출송(도성밖으로 내쳐짐)당한뒤 얼마후 다시 관작이 복귀되었으나 향리에서 후세시켰습니다.비록 관직이 높지 않았으나 예안김문의 첫족보 발간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등 끼친 영향이 큰 관계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분입니다. -[11/04-06:39]- ........................................................................................ ■ 이석: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11/04-23:27]- ........................................................................................ ■ 이석: 송곡공은 1660년에 문과에 급제한 이래 정언, 대사간, 대사헌, 이호형공의 4조의 참판과 홍예문관의 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며, 남인으로 활동하셨던 분입니다. 이 외에도 문주사 풍담대사비가 김포에 있고, 또다른 사서를 찾아보니 오리 이원익선생 묘갈명과 위의 노주 김태일 선생의 묘갈명을 찬하셨습니다. 그보다 앞선 -[11/08-14:39]- ........................................................................................ ■ 이석: 시대에 도촌공이 사셨는데, 도촌공은 송곡 이서우의 8대조 부사정공 경연의 형님인 경창의 맏아드님이셨으며 이분께서 문절공 김담선생의 사위이셨습니다. -[11/08-14:41]- ........................................................................................ ■ 이석: 다시한번 상세하신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11/08-14:41]-